부드러운 고기나 생선을 담는다. 계란요리를 담는다. 단백질이다.

 

나물을 담고 한 가지 밑반찬을 담는다. 두 개의 반찬 통에 나누어 담는다. 그리고 연두부와 김을 더한다.

 

열세트가 준비된다.

 

혼자 사시는 열 분의 어르신들에게 매 주해 드리는 반찬 봉사다.

 

황미정.....

 

10년간 그녀에게 이 일은 습관을 넘어 일상이 되었다.

 

5월의 녹음은 아직 그 색이 연하다. 그리고 부드럽다. 그녀를 만나러 가는 골프장 'P 밸리' 입구 도로 양옆은 무성한 나무들이 만든 터널이 풍요롭다. 그 터널도 부드러움이 감싸 안았다.

 

직원 식당에서 그녀를 만났다. 오십 대 중반인 그녀는 밝다. 그리고 부드럽다. 흐트러짐이 없다.

 

충남 서천이 고향인 그녀는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목사님이셨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정생활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1남 5녀의 2녀였던 그녀는 어머니와 언니가 돈벌이를 위해 떠난 집안 살림을 떠맡았다. 10살 어린 남동생을 업어키우고 할머니를 모시고 살아냈다. 그녀에게 책임감이 그녀의 몸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시작점이다.

그녀에게 가정은 언제나 책임지어야 할 대상이었다. 이 책임감은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서울로 직장을 옮길 때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서울에서 남편을 만났다. 그러나 책임감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남편이 심하게 다리를 다쳐 서울 생활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요양이 필요했다. 남편의 건강 회복을 위해 물 맑고 공기 좋은 장소를 찾았다. 그래서 찾은 곳이 가평 설악이었다. 설악으로 내려왔을 때 그녀의 나이 23살이었다. 그렇게 설악 사람이 되었다.

 

설악에서 그녀는 가리지 않고 일을 했다. 일거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갔다. 식당에서 궂은 일도마다 하지 않았다. 그 식당 일이 그녀의 인생을 바꾸어 버렸다. 눈 설미 있고 손재주가 많은 그녀는 빨리 식당 일을 배웠다.

음식 조리부터 운영 그리고 서빙까지 꼼꼼하게 챙기고 익혔다. 때 마침 신축한 건물에 30평 점포가 나왔다. 그곳을 얻어 식당을 차렸다. '솔 가든'이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일을 했다. 아침 6시 아침식사를 시작으로 밤 12시까지 술 손님까지 매일 2-3시간 쪽 잠을 자며 식당을 운영했다.

성수기에는 관광버스 6대의 손님을 받았다. 식당 홀 안은 물론 건물 주변과 하천 부지의 특대형 평상에 손님이 넘쳐났다. 300-400명의 손님을 치러냈다. 6년간 '솔 가든'을 운영하며 처음 가졌던 꿈보다 더 많은 돈이 모아졌다. 거기까지였다.

 

상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상상하지 못할 일 처리를 위해 차곡차곡 모았던 돈이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그리고 빚과 가정만 남았다. 그녀의 나이 32살 때였다.

 

참 쉽지 않은 나날이었다. 그때 그 어려운 시기에 단골손님이 연결해 준 자리가 지금 골프장 'P 밸리' 직원 식당 운영이었다. 열심히 일했다. 남은 빚을 갚을 수 있었다. 지금은 그 자리에서 직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벌써 20년이 훨씬 넘은 시절의 이야기가 되었다.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온 삶. 잠시 옆을 바라보는 것조차 사치로 느껴지는 생활에서 그녀는 깊어질 수 있었다.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는 그녀는 이제는 자신의 삶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일이 행복이라고 한다. 그래서 가진 시간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어 준다.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하나라도 채워주고 싶은 것이 그녀의 마음이다.

 

반찬 배달도 그중의 하나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에게 한 끼라도 따뜻하게 드시게 하고 싶은 마음으로 반찬을 만든다. 이즈음은 관광버스를 운영하는 남편이 큰 도움을 준다. 지방 운행을 다녀오면 그 지방의 특산물을 일부러 사가지고 온다. 생선도 있고 해산물도 있다. 그러면 그 주간의 반찬은 특별식이 된다.

 

그녀는 잊히지 않는 일이라며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오래된 이야기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매주 반찬을 가져다드리는 이천리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부부가 계셨다. 어느 날 갑자기 이분들이 생각이 나서 정기적인 반찬 배달과는 별도로 곰탕을 끓여 가져다드렸다.

그전 며칠간 식사들 못하시던 두 분은 곰탕을 드시고 기운이 나신다고 참 좋아하셨다. 표정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데 그다음 주 두 분이 일주일 간격을 두고 돌아가셨다.'

 

그녀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순간을 채워가고 기다림을 채워가는 것이 삶이라고 말하는 이유 중에 하나다.

 

음식을 조리하고 요리로 만드는 일이 자신의 달란트라 생각하는 그녀는 앞으로 60세 때까지 반찬 배달을 하고 싶다고 한다. 그녀는 한번 결정하면 10년은 지키고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녀의 결정은 언제나 신중하다.

그리고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나를 맞추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오랫동안 다른 사람과 선한 관계를 유지하는 그녀의 비결이다.[조규성 설악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