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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겅퀴꽃 그늘에 숨어들던 눈을 치뜨고
여자는 발로 모래를 헤집으면서,
강가에 선 남자의 맨발을 눈부시게 바라본다.( 중략)
햇빛 속에 남자의 발 밑에서 강물은 뒤척인다.
아지랭이로 뜨거움은 피어오르고.(생략) 」
이하석의 시 「강변유원지」의 일부
인자요산 지자요수(仁者樂山 智者樂水)라고 했던 사람은 누구였던가? 비록 나는 그다지 지혜롭지 못하지만 물을 좋아하고 바다를 좋아한다. 지난해 8월 동해 송지호 해수욕장에 다녀왔다.
내가 가족을 두고 홀로 여행을 떠난 것은 나이가 들면서 무디어져가는 감각과 영혼을 일깨워 나 자신을 돌아보며 무기력한 생활에 삶의 의욕과 역동성을 회복하고 싶어서였다.
나는 평소 여행지를 고를 때 좀 생경하고 불편하더라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 그리고 새로운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을 선택한다. 국내에서는 오지(奧地)를 제외하면 그런 곳은 드물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동해안으로 발길을 돌렸다. 미시령을 넘어 청간정에서부터 출발하여, 아야진, 교암리, 백도, 자작도, 삼포, 봉수대, 송지호, 공현진, 가진, 반암, 거진, 화진포까지 두루 살펴보고 송지호 해수욕장에 여장을 풀었다.
송지호 해수욕장! 작열하는 태양아래 청춘 남녀 아베크족이 파라솔 대신 형형색색의 텐트를 치고 해변에서 비치발리볼을 하고 파도타기를 즐기고 있다. 지금 나의 텐트 앞에도 대여섯 명의 남녀가 편을 갈라 모래사장에서 비치 발리볼로 게임을 하고 있다.
나는 배구의 스코어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다만 한 번도 햇빛에 노출되지 않은 우유빛 피부의 남녀들이 역동적인 동작과 함께 자그마한 실수에도 까르르 웃음소리를 내며 공놀이 하는 모습에 관심이 있을 따름이다.
투박한 선글라스를 쓰고 나는 가끔 원거리 수평선을 응시하다가 바로 앞에 배구하는 여섯명의 남녀를 바라본다.
미끈한 다리, 식스팩의 복부, 커브진 허리. 상대편이 넘긴 볼을 잘 받아넘기기 위해 쫒아가는 숙녀들의 달음박질로 풍선처럼 부푼 수밀도는 상하로 크게 출렁이고 땀은 달디단 과즙이 되어 모래위에 뚝뚝 떨어진다.
이때 비키니에 속박된 순백의 수밀도는 푸른 하늘을 향해 자유를 달라고 외치며 탈출을 시도하지만 강력한 주인의 의지에 의해 번번이 실패한다.
언제였을까? 나에게도 저런 젊은 시절이 있었지. 이제 장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60세 중반, 몸도 마음도 모두 칼집에 든 칼이다. 인생이 서글퍼진다. 그러나 그렇게만 생각할게 아니다.
고등학교시절 국어교과서에서 읽은 적이 있다. 소설가 이효석은 낙엽을 태우면서 허무해지기 보다는 강력한 생활인의 자세로 돌아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날 밤 건강한 그러면서 혼곤한 열락(悅樂)의 청춘 남녀 텐트 사이에서 하루 밤을 지새우며 무기력한 삶에 활기를 되찾고 에네르기를 충전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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