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가스를 떠나 유타주 시더시로 향했다. 생각했던 모래 사막은 아니지만 황량한 광야에 남북으로 난 프리웨이 주변에는 이름모를 관목들 사이로 조금 키큰 조수아 나무들이 나를 반겼다.  조수아나무를 멀리서 보면 소나무 비슷하고 가까이서 보면 소나무와는 달랐다.

네바다주를 지나 더 북쪽으로 올라가 유타주에 접어들자 이제는 조수아 나무는 자취를 감추고 시더나무 군락지가 도로 양편으로 전개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삼나무로 불리우는 시더트리.  시더나무가 많아서 시더시라고 이름 지었을 거라 추측하며 시더시에 여장을 풀었다.

지난 7월 30일,  6.25전쟁 정전 60주년을 맞아 시더시에 거주하는  참전용사 한분을 만났다. 팔순을 넘긴 이  미군 노병이 들려준 이야기는 이데올로기를 떠나 전쟁과 평화, 인간의 구원 문제를 담은 톨스토이의 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다. 

“60년전  1950년대 초 시더시는  사막에 특별한 산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초원지대도 아니어서 대규모 목축업도 힘든 척박한 곳이었지요,  부모님들은 소 나 말 한 두 마리를 기르는 소규모 낙농이 대부분이어서 가난하기 짝이 없었지요. 소 한마리를 잡으면 살코기 뿐 아니라, 우족, 내장 까지 먹었어요. 버리는 것이  없을 정도로,  미국인은 소내장 같은 것은 먹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관은 오해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남유타주의 시더, 비버, 세인트 조오지, 리치필드 등 마을들에는  한국전에 참전할 군인들을 모집하다는 벽보가 나붙었어요. 보수는 월 80달러에서 120달러. 20세 우리 젊은이들은 특별한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할 일도 많지 않았기에 너도 나도 군에 지원하게 되었지요. 삼형제가 한꺼번에 지원한 경우도 있었죠.

처음에 우리는 유엔군의 일원으로 한국전에 참전하여 북한 공산주의자들로부터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간다는 거창한 명분같은 것은 없었어요.  우선 꽤 괜찮은 보수를 준다니까 그것에 끌렸지요.(그당시 월 100달러는 큰돈이었어요). 

월급에서 절반정도는  집에 송금하여 부모님을 돕고  또 절반은 저축하여 군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나와 무언가 사업밑천으로 쓰기 위해서 였죠. 그리하여 일정기간 군사 훈련과 지형 적응 훈련을 마치고 한국에 파평되었어요.
 
대부분이 남유타의 젊은이들로 구성된 600명의 미 제213야전포병대대는 드디어 1951년 5월 26일 밤 중공군의 춘계공세때 가평의 홍적리 계곡에서 작전을 수행하게 되었어요.  지형은 낯설고 날씨는 춥고 배는 고프고 통신선은 끊기고 공포감마져 들었죠. 인간으로 태어나 내가 누군가에게 총을 쏴야 내가 살 수 있는 상황에 놓였는데 기분이 어떨 것 같아요.

아무리 적일지라도 내가 누군가를 총으로 쏴 죽여야 한다는 상황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었죠.  몇몇 전쟁광이라면 모를까. 그러나 내가 총과 포를 쏘지 않으면 나 뿐 만아니라 나의 동료들로 다 죽게 된다고 생각하면 달라지죠. 

중공군의 인해전술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공포감을 주었지요.  총탄이 콩볶듯하고  포성이 지축을 흔들며  꽹가리와 북을 치며 어둠속에서  수만명의 중공군이  함성을 지르며 밀고 내려 올때  아무리 아군의  화력이 우세하다 할지라도 우리들은 정신적으로 크게 위축되었지요.

공포 와 두려움 바로 그 자체였어요.  방아쇠를 당기고 또 당기고 포를 쏘고 또 쏘고 그래도 인해전술은 계속되었지요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중공군은  북쪽으로 퇴각하고 새벽이 되어 총성과 포성이 멈췄어요. 여명과 함께 우리는 진지에서 앞으로 나아가 밤새 포격이 집중되고 총격전이  벌어 졌던 홍적리 계곡에 가보았지요.”

 

나는 그 광경에 대한 노병의 설명을 듣고 너무 참혹해서 글로 다 옮기기 에 적절치 않아 여기 시로 대신하고자 한다.

 

“오동도 동백군단을 처음 보았다.(중략)

뻥 뚫려 대오 잃은 출정식

저 불쌍한 모가지들을 어쩌나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않은

질펀한 군모 꽃무더기들 (중략)

인식표 버린 동백꽃들이

비로소 마음놓고 군화끈을 풀고 있었다”

 

구순희 의 시 ‘오동도 동백군단 ’ 중에서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널브러져 있는 중공군 시신들. 일부는 총자루를 쥐고 군복입은 정규군으로 보였으나 사망자의 상당수는 군복도 아닌 허름한 무명옷을 입은 15세 정도의 까까머리 소년들이었어요.  그들은 총도 없고 몽둥이나 북, 꽹가리 등을  지니고 있었어요. 

가평전투에서 승리하고 고국에 돌아왔을 때 처음에는 어느 정도 자부심도 있었어요. 그러나 그것도 잠시 지난 60년 동안 계속해서 비록 적군이었지만 너무 많은 소년들을 죽였다는 죄책감 때문에 악몽에 시달렸어요”

 

그 노병의 이야기를 듣고 돌아와 나는 그날밤 그 노병을 위해  ‘악몽’이라는 자작시를  한편 썼다.

 

“낯설게 비웃는 환영들 지나가고

가슴 억누르는 그 무엇에 선잠 깨네

한밤중 식은땀에 속옷 적시고 맥박소리 어둠을 가르는데

아! 부끄러워 이불 끌어당겨 잠을 청해 보지만 

오라는 잠은 오지않고 번뇌 만이 쌓이누나” 

 

 

그 노병은 이제 팔 순을 넘겼고 삶의 종착역이 가까워 질수록 신과의 대면 그리고 자신의 구원에 대해 고뇌한다고 했다.  자신이 죄인이라며 자신의 죄를 뉘우친다고 했다. 

 

그 노병은 과연 죄인일까. 그러면 이 원죄는 누구에게서 있는 것일까?  6.25사변의 시작은 ? 남침의 원흉는?  또 누가 이렇게 어린 중국의 무지몽매한 소년들을 몽둥이, 북, 꽹가리를 쥐어주고 함성을 지르며 남쪽을 향해 돌진하라고 하였을까.

그리고 그들이 총을 쥐지 않았으니 그들은 정말 우리에게 아무 위협도 되지 않았을까?  누가 그들을 다시는  살아 돌아가지 못할 전투의 한복판으로 몰아 넣었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당시 북한군 수뇌부와  중공군 수뇌부 이름이 떠올랐다. 또 몽둥이와 북 꽹가리를 든 중공의 소년들이 비록 정규군은 아닐지라도 한두명의 북한군이나 중공인민군과 함께 우리의 후방지역 종심깊이 진입한다면 그지역은 이미 적화된 것으로 봐야 하므로 그들도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흔이 역사에는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원수도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6.25전쟁때 철천지 원수였던  중국과 수교하고 이제 과거를 뛰어 넘어 우호 협력관계를 쌓아가고 있다. 그리고 지난 여름에는 한국과 중국의 참전노병들이 함께 파주의 적군 묘지를 찾아 참배하는 사진을 신문에서 보았다.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었다.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웠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 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욱 신비로운 것이로다.(중략)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램 속에 깃들어 있도다.(중략)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놓아 버린다”

 

구상의 시  ‘적군 묘지 앞에서’

 

이제 우리가 중국과 선린 우호 관계를 쌓아 가더라도 뼈아픈 과거사를  잊지는 말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중국의 소년병 못지않게 우리의 젊은 학도병의 희생 또한 너무나 컸기에 . 그 노병은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휴머니즘을 이야기하는데 그래도 듣는 나는 보수와 진보 그리고 이데올로기가 앞을 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