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곡을 좋아하게 된 것은 나에게 잊지 못 할 사연이 있어서이다. 26세가 되던 1980년 나는 ROTC 장교로 임관하여 춘천에 있는 2군단사령부에서 통역장교로 근무하게 되었다.

경기도 시흥 고향마을에는 나보다 한 학년 위였고 한 살 연상인 첫사랑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 내가 군대 가기전 사랑의 맹세를 하고 장래를 약속한 사이였다.

군복무를 시작한지 6개월이 지났을 때 동생으로부터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한마을에 살던 그녀가 지난주 재미동포에게 시집을 갔다는 것이었다. 청천벽력! 그녀를 떠나온지 불과 6개월 사이에 무슨일이 일어난 것일까.

나에게 이별의 통보도 하지 못하고 이렇게 민속하게 떠나간 이유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정상적인 군복무를 하지 못할 정도로 감정조절이 되지 않았다. 그녀와 꿈꾸던 행복한 미래가 산산조각이 난 것에 대한 절망감 또 한편으로는 배신에 대한 분노였다.

그러나 어쩌랴. 군에 온지 1년만에 휴가를 얻어 고향에 가게 되었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1981년 가을 어느 날 오후 고향에 도착했을 때 마을은 정적이 감돌았다. 어른들은 가을걷이를 위해 들녘에 나가셨는지 인기척이 없었고 몇 마리의 개들만이 킁킁거리며 거리를 싸돌아 다녔다.

동구 박을 한 바퀴 돌고 드디어 그녀 집에 들어가 보았다. 항상 아들처럼 대해주시던 그녀의 부모님도 또 상냥하게 미소 짓던 그녀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조그마한 흔적이라도 찾으려고 방학 때면 자전거를 타고 함께 달렸던 강변 뚝방길, 어스름 달빛아래 키 큰 노송 사이에서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을 간직하고있는 송전의 숲, 그리고 가끔 송도에서 소래포구를 거쳐 수원까지 그녀와 함께했던 협괘열차의 시발역인 송도에도 가보았다.

어디에도 그녀의 흔적은 없었다. 다만 그녀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 가슴만 아려왔다. 황혼이 될 때까지 마을 어귀를 배회하던 나는 지는 해가 서쪽하늘을 빨갛게 물들일 때 뒷동산에 올라 나도 모르게 구슬프게 노래를 부르게 된다.

피맺힌 절규의 노래를 『아름다운 저 바다와 그리운 그 빛난 햇빛 내 맘속에 잠시라도 떠날 때가 없도다.

나는 34년 만에 다시 그 노래를 듣게되었다. 호주 시드니에서 포트스테판으로 가는 길에서였다. 눈부신 햇살아래 끊임없이 밀려오는 성난 파도 그리고 가파른 해안 절벽을 사정없이 부딪치고 고운 포말을 일으키며 다시 넓은 바다로 회귀하는 파도 파도들....

그 성난파도가 일으키는 큰 파문에도 불구하고 바다의 원형을 신속하게 복원하는 바다의 위대함. 그 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해안선을 따라 달리던 버스안에서 나와 동행했던 김인구 사무처장 (청정가평지속가능발전협의회)이 갑자기 이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에게도 이 노래에 대한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이국적인 정취에서 무반주, 구성지고 애절한 목소리로 부르는 그의 노래는 과거의 추억을 되살렸고 가슴속에 뭉쳐있던 나의 응어리를 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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