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스티조 처녀의 경쾌한 걸음걸이

 

자유의 방임 꿈틀내는 욕망

(중략) 」

필자의 자작시 「투싼」의 일부

 

툼스톤! 이름만 들어도 내마음이 설레인다. 버트 랑카스터와 커크 더글러스가 최고의 명연기를 펼쳤던 60년대 서부극 「OK목장의 결투」 무대가 툼스톤이었고 야성미 넘쳤던 커트러셀과 발킬머가 열연한 서부극도 「툼스톤」이었고, 리암니슨이 원숙미를 보여준 영화도 「툼스톤」이었다.

그리고 중학생들이 열광하는 미국 프로레슬링 레슬매니아에서 최고의 프로레슬러 저승사자 언더테이커가 거구의 케인을 거꾸로하여 머리를 무릎사이에 끼고 수직으로 무대 에 내리찍는 치명적인 기술이 「툼스톤파일드라이버」다.

이처럼 툼스톤이라는 이름에는 서부 총잡이들의 냉혹함과 복수 그리고 동시에 사나이들의 우정과 의리가 서려있다. 나도 한때는 서부활극에 열광했었고 그래서 툼스톤이라는 지명에 대해 동경했었다.

툼스톤을 가기 위해선 아리조나주 투싼을 거쳐가야한다. 툼스톤은 투싼으로부터 1시간이내의 거리에 있다. 투싼은 멕시코 국경으로부터 북쪽으로 71KM 떨어진 미국 서남부 최남단도시이다.

멕시칸들이 많이 살고있는 것으로 봐서 이곳이 과거 멕시코 땅이라는 것이 유추해 볼수있었다. 일년 강우량이 300㎜가 되지않고 습기가 거의 없었다. 내가 투싼에 도착했을때 수은주는 41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내가 묵은 민박집은 투싼시내 외곽 산중턱에 위치해 있었다. 멀리서보면 동굴속의 집 같이 보였다. 더위를 피하기위해 사암으로된 바위를 파서 집을 지어 앞만 전망이 트이고 좌와우, 뒤 그리고 지붕은 모두 바위안에 들어있는 형국이었다.

직사광선을 피했기에 습기가 없는 실내는 그런대로 서늘하였다. 숙소에 도착했을때 민박집 주인 아주머니는 나에게 방을 하나 배정해주었다. 그집은 방이 네 개 있었는데 하나는 주인 부부가 사용하고 두 개의 방은 이미 독일인 관광객에게 내준상태였다 그리고 남아있는 방이 내몫이 되었다.

내방 침대옆 원탁형 탁자위에는 액자가 하나 놓여있었다. 액자속 사진은 주인 부부와 딸이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방은 딸의 방이었는데 딸이 대학 기숙사에 들어가 있었기에 관광객인 나에게 내준것이었다.

부인은 메스티조였고 민박운영, 백인 남편은 자동차 정비공, 딸은 피닉스에 있는 아리조나대학 물리학도였다. 내가 도착한지 나흘째 되던날 피닉스에 있던 민박집 딸이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밤 늦게 집에 온 모양이었다. 다음날 아침 주인 아주머니는 관광객들에게 어여쁜 딸을 소개했다.

그녀는 완벽한 백인처럼 보여도 1/4은 멕시코 원주민의 피를 이어받았다.이름이 비앙카였다. 그녀는 얼굴엔 항상 화사한 미소가 깃들어잇다. 그리하여 아침식사는 처음으로 독일인 두 부부와 민박집 주인 부부 와 비앙카 그리고 나 여덟명이 함께하게 되었다.

우리는 아침식사를 하면서 독일인 관광객의 투싼과 툼스톤 투어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독일인 두 부부는 앞으로의 일정으로 투싼에서 북쪽으로 약 1000㎞ 떨어져있는 아리조나주 최고의 명승지 그랜드캐년을 가보고 싶다고 이야기 했다.

우리는 즉흥적으로 그랜드캐년을 가기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독일인 두 부부와 나는 여행경비를 갹출하여 밴을 빌리고 그집 비앙카에게 투어가이드를 맡아달라고 하여 먼길을 떠났다.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부산에서 신의주 보다도 더 먼 거리였다. 모두가 비몽사몽 차에서 부족한 잠을 보충했다. 어느새 비앙카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청바지를 벗어버리고 산뜻한 멕시코풍 스커트와 가볍고 얇은 하얀 샤츠형 브라우스로 갈아입고 검은 부츠를 신고 나타났다.

머리는 브론드이고 몸은 꽤 관능적이다. 우리일행은 점심을 먹기위해 도로변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풀밭위에 돗자리를 깔았다. 그녀는 돗자리위에 놓인 아이스박스에서 음식들을 꺼내기위해 머리를 숙여 허리를 굽히자 짧은 블라우스 옷단 아래로 하얀 등골이 드러났고 다시 뒤로돌아 몸을 수그리자 반쯤 열린 블라우스속으로 우유빛 풍만한 가슴이 내눈안에 들어왔다.

이틀동안 같이 여행을 하면서 그녀는 눈이 마주칠때마다 생긋 웃어보인다. 서로 첫눈에 반했다. 그녀는 동양에서 온 청년에게 호기심이 있는 것 같았고 나는 메스티조 처녀의 특이한 매력에 반해있었다. 어느 시인이 이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젊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청춘남녀의 마음이란 불과 휘발유처럼 인화성이 강한지라 친밀해지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없었다.

 

우리일행은 다음 날 밤 9시가 되서야 그랜드캐년 관광을 마치고 투싼의 비앙카네로 돌아왔다. 내일이면 나는 서울로 출발해야한다. 고단한 마련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평소 침대생활에 익숙치 않은 나는 푹신푹신한 침대보다는 양탄자 깔린 방바닥이 더 편했다.

그러나 이국에서의 마지막 밤은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엷은 흰색 커튼이 창문 양쪽으로 묶여있었다. 불을 끄고 모로 누워 넓은 영창을 통해 하늘을 보니 서울에서 보던 반달이 떠있었다.

푸르스름한 달빛이 부서지는 고요한 밤 사막의 찌르레기 우는 소리를 들으니 나그네의 심사는 더욱더 허전하고 외로워졌다. 눈을 감고 상념에 잠겨있는 순간 노크도 없이 살며시 문이 열리고 양탄자 위를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인가. 유령인가.

나는 자는 척하며 실눈을 뜨고 희미한 방안을 살폈다. 비앙카였다. 그녀는 꽁지발을 하고 누어있는 내 옆을 스치며 머리맡에 있는 붙박이 장쪽으로 걸어갔다. 이곳이 그녀 방인지라 아마 잠옷이락도 가지러 온것일까. 무엇을 찾고 있었다.

그녀가 내 머리 맡에 서있으면서 붙박이장에서 무엇을 찾는 순간 그녀의 치맛단이 내 얼굴을 정확하게 이등분하여 걸쳐졌다. 오른쪽 눈을 감으면 그녀의 내밀한 치마 속이 보이고 왼쪽 눈을 감으면 어슴프레 방안이 시야에 들어왔다.

「한 낮에 보았던 블라우스속 뽀얀 수밀도

그리고 지금 내 머리맡 대리석같이 우아한 그녀의 다리

 

입안에 침이 마르고 마구뛰는 심장

저릿한 전율속에 나를 죽이는 고통

그것은 차라리 황홀이어라

 

아리조나 선인장꽃 보다 진한 선홍의 입술

이제 영혼속에서나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필자의 자작시 「비앙카」의 일부

 

그녀가 찾던 옷을 다 챙겼는지 막 나가려고 하였다. 팔만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의 그녀를 두고 나는 입안이 마르고 심장이 뛰었다. 몇 번이고 망설이다가 손을 내밀어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순간적으로 느끼는 매끄러운 감촉, 그녀 발목을 살며시 끄는 순간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옆으로 스르르 미끄러져 들어왔다. 희미한 달빛에 반사된 22세 처녀의 더운 눈길을 보았고 약간 물기에 젖은 촉촉한 입술을 느꼈다.

순간 그녀는 벌써 뜨거운 입김을 내뿜으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그녀 등을 쓸어내리던 나는 그녀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겨드랑이 은은한 체취는 욕망의 상승작용을 불러일으켰고 나는 그만 의식을 잃었다.

황홀경에 빠진 사람처럼 경련을 거듭하던 나는 내마음을 빼앗는 달콤한 맛과 나를 죽이는 저릿한 고통속에 기나긴 희열을 느끼며 영원속에서 그녀를 다시 보기를 기대하며 잠이 들었다. 덧없이 달콤한 단잠이였다. 아침에 깨어보니 그녀는 키친 어머니 옆에서 아침식사 준비를 거들고 있었다.

 

20대 젊은 시절 황량한 아리조나 사막에서 나는 한떨기 빨간 선인장은 발견했다. 그 선인장은 가시가 치명적이었다. 나는 그 선인장에 찔려 투싼에 이틀을 더 머물렀고 예정된 툼스톤에 가지 못했다 그리고 아직까지 가지 못했다.

 

추신: 필자의 투산여행은 1983년 8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