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톰은 10만 마력의 힘을 가진 로봇소년으로 인류를 위협하는 사건이 터질 때 마다 자신의 몸을 불사하고 위험으로부터 많은 사람을 구해낸다.

한때 아톰은 인간에 의해 버림을 받았지만 인간을 위해 봉사하였고, 자신을 구해주다 해체된 로봇의 빨간 양말을 평생 신고 다니면서 그 은혜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던 인간보다 더 따듯한 마음을 지닌 로봇이었다.
 

현실에는 이런 아톰과 같은 로봇은 없지만 아톰이라는 별명을 지닌 분이 계셨다. 그분은 바로 지난 2015년 12월 3일 서해대교에서 낙뢰에 의한 화재를 진압하다 불의의 사고로 순직한 고 소방령 이병곤님이다.
 

25년 전 소방공무원이 된 이래 사고현장에 누구보다도 빨리 도착해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해 내셨고 말보다는 행동으로 몸소 정의를 실천하셨던 분이셨다.

직원의 불행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기고 이를 함께 나누셨던 분이기에 업무상 과실을 범한 직원을 변호하다가 미움을 받으시기도 하셨지만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셨고 자신이 결정하고 행동한 것에 추호도 후회를 하지 않으셨던 강직했던 분이셨다.

또한 생전에 독립투사 김구를 존경하여 그분이 남긴 말씀 중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이라는 말을 가슴에 담고 사셨기에 처음 하시는 일에는 신중에 신중을 더하여 행하셨던 리더다운 면모를 지니셨던 분이셨다.
 

고 소방령 이병곤님은 계급 뿐만 아니라 나이도 차이가 많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직원에게 항상 “이반장님, 정반장님”이라고 존대해 주시며 낮은 자리에 임할 줄 아셨던 분이셨다.

그분을 좀 더 깊게 알게 된 계기는 인사이동에 따라 고 소방령 이병곤님(당시 소방경)께서 가평119안전센터장으로 오시면서부터이다.
 

소방공무원이라면 알겠지만 소방공무원은 화재만 진압하는 것이 아니다. 화재진압, 구급, 구조의 기본적인 업무에 화재예방을 해야 하며 이와 연관된 여러 일을 해야 한다.

또한 이를 행하는 소방공무원은 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져야 하기에 여러 교육을 이수해야 하며, 스스로도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제 갓 입문한 소방공무원에게는 모든 것이 처음이라 생소하기만 하고 시키는 일만 처리하기에도 바쁘고 업무에 치이다 보면 자기관리가 소홀해진다.

또한 소방공무원으로서 오래 근무한 사람은 매년 반복되는 업무이기에 타성에 젖어들기에 쉬어진다. 이러한 조직분위기를 쇄신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신 분이 바로 고 소방령 이병곤님이다.

센터에 오시면서 첫 번째 하신 일이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으시려 조직내적 뿐만 아니라 외적으로 많은 활동을 하셨다. 사회 각계각층에 안전문화 확산을 위해 거리에 괘념치 않고 강의하러 가셨고 젊고 패기 있는 직원도 하기에 망설여지는 안전문화 확산을 위한 경진대회도 50이 넘은 나이에 참가하셨다.
 

한번은 자격증을 준비하는 이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다. “시간이 없다. 3교대라서 뭐 하나 제대로 배울 수 있을게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시간이 없고 돈이 없어 배우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투정에 불과하다. 나는 돈이 없어 지게차 운전수가 일을 마칠 때 까지 기다렸다가 사정사정해서 지게차 기술을 배웠고 당시 2교대임에도 불구하고 비번일 때마다 굴삭기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시험장에서 시험을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을 기다렸다가 합격한 사람에게는 합격한 노하우를 배웠고 떨어진 사람에게는 떨어진 이유를 배웠다.

배우고자 한다면 시간 그리고 돈은 그리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니다. 또 사람들이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다거나 도와주지 않는다고 탓하지 마라. 사람이 열정을 지니고 자신이 하고자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임한다면 그것을 표현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너를 이해해 줄 것이고 어려움이 있을 때 기꺼이 너를 도울 것이다.”
 

그리고 선문답을 즐기셨는데 “이반장님, 이건 어떻게 생각해요”, “이반장님. MPA를 높이로 바꿀 수 없나요”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에 대해 질문을 가끔 하셨다. 센터장님의 질문이기에 젊은 직원들이 모른다고 대답할 수 없어 찾아보겠다고 말씀드리고 찾아보기 일쑤였다.
 
하지만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신입직원이 찾기에는 역부족인 것이 만아 찾지 못하는 것이 허다하였다. 그러다 일이 바빠 미처 찾아보지 못하고 있으면 센터장님은 다시 그것에 대한 해답을 찾았냐고 물어보신다.

직원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셨던 분이시기에 화를 내시는 일은 없었고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시간을 두고 천천히 답을 찾아보라고 하셨다. 그렇다고 끝난 것이 아니기에 어떻게든 계속 유념해 두고 찾아봐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센터장님은 정답을 원하셨던 것이 아니었다.

답을 찾아 가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관련지식을 체득하고 자칫 타성에 젖기 힘든 조직분위기를 쇄신하고 항상 깨어 있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논어를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花香百里(화향백리), 酒香千里(주향천리), 人香萬里(인향만리) 꽃향기는 백리를 가고, 좋은 술의 그윽한 냄새는 천리를 가지만, 인품 있는 사람의 고고한 향기는 만 리를 간다.
 

내가 이글을 쓰는 이유는 한 소방공무원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고소방령 이병곤님이 우리 소방조직을 위해 헌신한 마인드와 리더십을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한 개인으로서 자질향상을 위해 무엇을 연마해야 할지, 타성에 젖은 조직의 혁신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우리는 그분의 유지를 받들어 우리 스스로 알아야 하며, 참된 리더상을 몸소 실천하신 것을 우리는 보았기에 우리가 그 자리에 섰을 때 끊임없이 반성하고 각성하는 리더로 거듭나야하는 것이다.
 

오늘 아톰이라고 불리셨던 분이 하늘로 돌아간다. 25년간 수많은 사람을 구하고 마지막 10만력의 힘으로 28톤의 철근을 가슴으로 받아 동료를 구하고 하늘로 가신다.
 

안전 불감증, 비리, 무사안일, 타성 등 억겁의 무게를 짊어지시고 오늘 하늘나라로 가신다.

우리 소방공무원은 아톰과 같이 10만 마력의 힘은 없다. 하지만 소방공무원 모두가 힘을 합친다면 10만 마력 그이상의 힘을 내어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고 소방령 이병곤님의 말씀이 아직도 귓전을 맴돈다.

“우리는 시간이 없고 돈이 없는 것이 아니다. 열정이 부족한 것이다...”

 

[ 기고 : 가평소방서 예방팀 소방사 이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