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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기에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꽃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릴적 나는 형들이 부르는「산 너머 남촌에」라는 유행가를 흥얼흥얼 따라 불렀다. 그리고 1968년 우리 집에 최초로 금성 흑백 TV가 들어왔을때 비로소 이 노래를 부른 가수의 모습을 영상으로 보게 되었다.
가수 박재란은 고운 얼굴 꾀꼬리 같은 목소리 로 영상시대의 스타였지만 금방 사라진 것이 아쉬웠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어 이 좋은 노랫말이 파인 김동환의 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 아 아 당신만을 잊지 못할까
사무치게 그리워서 강변에 서면
눈물 속에 깜박이는 강 건너 등불
정훈희의 노래 「강 건너 등불」의 일부
맑고 청아한 목소리의 가냘픈 숙녀가 내 곁에 다가왔다. 특히 그녀가 TV에 나와 이 노래를 애절하게 부를 때면 내 가슴은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그 가수는 정훈희였다. 그녀의 최고 희트곡 「안개」를 부를 때 보다 「강 건너 등불」을 부를 때 더 가슴에 와 닿았다. 20년의 세월이 흘러 어느 날 그토록 흠모하던 정훈희가 반포동 우리 집 옆으로 이사 왔다.
나는 그녀가 챙이 큰 모자를 쓰고 우아하게 아파트 단지를 산책할 때나 근처 마트에서 마주쳤을때 학창시절부터 열렬한 팬이었다고 고백하고 싶었지만 왠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난주 금요일 가평을 출발하여 서울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어둠에 잠긴 북한강변, LED 가로등에 하나 둘 불이 켜진다. 찬바람이 불고 싸라기눈이 차창을 때린다. 조용히 라디오를 켜는데 위의 노래들이 흘러 나와 홀로 우수에 젖어본다.
지금이야 교통수단이 발달하고 다리가 놓이고 터널이 뚫려 마음먹은 장소에 쉽게 다가갈수있지만 어렸을 땐 혼자서 동구 밖 벗어나기도 쉽지 않았다. 가평에서 산 너머 화천이나 강 건너 방하리는 저만치 떨어져 있는 느낌인데 이것은 행정구역이 다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산 너머」는 단숨에 달려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고 「강 건너」 또한 강물에 가로막혀 쉽게 다가갈 수 없는 피안의 세계다. 그래서 산 너머 마을을 상상하고 강 건너 세상을 동경하게 된다.
누군가 현대사회를 피로사회라 정의했다. 특히 현대인이 타인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고 하고 아주 가까이 접근하려고 이것이 상대방에게 피로감을 준다. 지근거리 대인접촉은 빨리 친밀해지는 장점이 있는 반면 관계가 또 급속하게 식어버리는 단점이 있다.
소월이 「산유화」에서 가까이 있는 꽃보다 「저만치」 홀로 피어있는 꽃을 예찬했듯이 나는 상대방에게 어느 정도 거리를 주고 숨 쉴 여유를 주고 싶다. 그리고 저 멀리서 상대방이 사는 모습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싶다.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눈 물속에 깜박이는 강 건너 등불
이렇게 1시간 흥얼 흥얼 옛 가요를 들으며 서울로 가는 데 눈발이 더욱 굵어진다. 함박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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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kggg@cho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