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시 폭포의 일부 .  빅토리아폭포

지난 여름 100년만의 더위라고 할 정도로 무더웠던 8월 어느 토요일 배낭을 메고 홀로 가평군 북면 석룡산에 올랐다.

조무락 골을 따라 좌측으로 1시간 이상을 오르니 석룡산 정상이 보인다. 정상부근 키큰 굴참나무 숲 평평한 곳에 돗자리를 깔고 더위를 식히고 준비해간 도시락을 먹고 나니 졸음이 쏟아진다.

참으로 서늘하고 상쾌하다. 맴맴 매미우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낮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리고 꿈 속에서 폭포를 보았다.

「지난달 우리 중학동창들은 그동안 모은 친목회비를 찾아 짐바브웨 빅토리아 폭포와 사파리투어를 위해 아프리카로 떠났다.

하라레에서 1박하고 다음날 아침 여행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우리일행은 (우리동창생 7, 조종사 1, 항법사1, 가이드1) 경비행기를 타고 빅토리아폭포로 향했다.

비행기가 이륙한지 40분, 광활한 사바나 대초원, 저공비행하는 비행기의 굉음에 놀란 누우떼, 얼룩말, 기린, 암팔라, 톰슨가젤, 코끼리떼 등 온갖 동물들이 경주하듯 질주한다.

대평원을 지나 열대우림지역으로 들어서니 2개의 산봉우리가 나타나고 높은 봉우리는 구름에 가려있다. 열대우림의 경치를 다 보기도 전에 구름속에서 쾅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의식을 잃었다.

비행기가 갑자기 나타난 구름에 시야가 가려 산에 추락한 것이다. 내가 의식이 깨어났을때 나는 옆구리에 큰 부상을 입고 밀림속 덩쿨위에 떨어져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다.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튕겨나와 키큰 나뭇가지에 한번 튕겼고 다시 떨어지다 아래 나뭇가지에 걸렸고 3단계로 칡넝쿨에 걸려 목숨을 건진 것이다.

주변에는 비행기의 부서진 동체와 타번린 잔해가 아주 광범위하게 널브러져있고 주변의 큰 나무위에도 찟겨진 날개가 걸려있었다. 하나 둘 동료들의 신음소리가 잦아들었다. 결국 공포의 며칠을 버틴 후 나 혼자 살아남았다.

며칠후 주위의 원주민들이 들것을 들고 나를 구조해 평지 마을에 있는 족장의 움막으로 옮겼다. 부족장이 뭐라고 한마디 지시했는데 그의 한마디에 부족원들이 아주 바쁘게 움직였다.

한사내가 마종나무에서 얻은 생명수로 나의 목을 축여주고 한 아낙네는 가나나무에서 얻은 키니네 껍질로 내 상처부위에 발라주었다.

이렇게 선량한 원주민들 덕분에 나는 기운을 차려 걷기 시작하고 정신과 육체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한달이 지났을까 부족장이 나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이제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고 귀국하기 전에 빅토리아폭포를 꼭 한번 보고 싶다고 했다. 이 부족은 원래 모계사회였는데 타부족의 침략이 많아지자 부계사회로 바뀌었고 일부다처제가 허용되고 남근숭배의 토템이즘이 있었다고한다

그리하여 지금도 그 잔재가 남아있어 움막에는 남근모양의 나무조각을 걸어둔 것을 볼 수잇다. 또 과거에 귀한 손님이 오면 족장이나 가장은 여러 부인들 중에서 가장 총애하는 부인으로 하여금 하루밤 손님을 접대하게 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하였다.

이제 이곳 아프리카 부족사회도 서구 문명이 침투해 코카콜라를 마시고 블루진과 맥도날드 햄버거도 즐긴다고 한다. 부족장은 48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1주일전에 맞아들인 48번째 부인(어린 신부)을 부르더니 근방에 있는 빅토리아 폭포에 안내해주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다음날 아침 그녀(48번째 부인)와 나, 둘이서 빅토리아 폭포로 향했다. 콘라드가 ‘암흑의 핵심’ 에서 말했듯이 열대우림의 숲속은 밝은 대낮인데도 한 밤중처럼 어둡고 서늘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강렬한 태양이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고 팔색조를 비롯한 온갖 새들이 새날을 노래하고 원숭이들도 이나무에서 저나무로 뛰어다닌다.

빅토리아 폭포에 오르는 마지막 깔딱고개!, 그녀가 한 발짝 한발짝 돌계단을 오르고 있다.

열대우림속에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그녀는 전신에 감전된 듯 반응하는 정염을 탱탱한 육체속에 숨기고 독일병정처럼 씩씩하게 진군한다.

그녀의 풍만한 엉덩이가 좌우로 크게 흔들리고 그녀의 특유의 체취가 나를 발정난 수캐로 만들어 버린다. 나는 분수처럼 솟구쳐 오르는 욕망을 억누르며 그녀 손을 잡아당겨 길 옆 숲속으로 들어간다.

태고의 음향과 원시의 무대위에 펼쳐진 열락(悅樂)의 향연, 급기야 그녀가 반전하여 상위로 올라서자 반질반질한 수밀도가 내 입술에 다을락 말락하고 가느다란 허리가 파도처럼 일렁인다. 반짝이는 새하얀 눈망울엔 광기가 흐르고 흥에 겨워 토해내는 흐느낌은 나를 몽환의 세계로 인도한다.
 

‘교미를 끝낸 모든 짐승은 슬프다’ 라고 외쳤던 사람은 누구였던가? 그때 무지막지하게 커다란 아프리카 구렁이가 눈을 꿈벅거리며 혀를 낼름 거리고 내 옆을 스친다. 나는 갑자기 공포에 질려 욕망도 사라져지고 다시 빅토리아 폭포를 향해 걷는다.

정상에 올라서자 평평한 대지위에 묵직한 포효소리. 좁은 협곡에 폭 2㎞ 낙차 150M의 거대한 물줄기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 거대한 물폭탄은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수직으로 낙하하고 부서진 하얀 포말은 소용돌이와 함께 급류를 타고 잠베지강으로 흘러간다. 폭포가 빚어내는 천둥의 굉음은 사자의 포효처럼 광야를 호령하고 폭포의 양 끝으로 시원(始原)의 무지개가 대자연을 수놓는다.

하얀 광목천을 펼쳐든 거대한 폭포수는 빅토리아여왕의 자태처럼 위엄있고 우아하다. 눈앞에 펼쳐진 이 장관, 아! 리빙스턴 박사도 나와 같은 감격이었으리라.」

한창 빅토리아 폭포의 장엄함에 도취되어 있는데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에 오수에서 깨어난다.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석룡산 정상을 향해 올라오고있었다. 빅토리아 폭포는 결국 백일몽 이었나? 언젠가 빅토리아 폭포를 한번 꼭 가보리라 다짐하면서 나는 도마치 고개로 하산하여 화천을 뒤로하고 가평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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